계절과 날씨의 변화가 없는 환경에서 살아간다면, 글이나 이야기의 서두를 무엇으로 시작했을까? 어쩌면 각자의 창의적이고 다양한 오프닝을 많이 사용했을지도 모를 일이지만…… 10월 하순이 가까워졌음에도 물향기수목원의 모습은 초가을의 푸르른 느낌이었다. 가을을 느끼기엔 날씨가 너무 따뜻하고, 자연은 초록의 모습이 지나치게 많았으나, 높고 푸른 하늘과 국화꽃이 가을임을 알려주고 있었다. 만추를 느끼고 싶은 마음은 뒤로 미루어두고, 포근한 가을 날씨를 즐기면서, 야외학습 나온 병아리 같은 유치원, 유아원 꼬마들을 실컷 보았다. 봄날의 새싹처럼, 꼬마들의 모습은 앙증맞고 귀엽기만 하다.
어설픈 자세로 뛰어가는 아이들의 뒷모습을 보고 있으면, 우리아이들이 어렸을 적에 아이의 뒤를 따라가며 넘어질 것만 같아 가슴 조이던 그 느낌이 그대로 재생되는듯하다.
물향기수목원은 도립수목원이라고 하는데, 별다른 특징이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좋은 사람과 산책하기에 좋은, 규모가 그리 크지 않아 돌아보기에 부담감이 없는 곳이었다.
가을의 정취를 마음껏 느낄 수 없었다는 것이 조금은 아쉬웠지만, 여유롭고 평화로운 시간이었다.

 

물향기수목원에서 찾을 수 없었던 만추를 2주 뒤 바로 집 앞의 공원에서 만났다.일요일아침, 베란다 밖으로 보이는 공원의 단풍이 예쁘다고 했더니, 걸마가 사진을 찍어주겠다며 데리고 나갔다. 조금 이른 시간이라 아직 푸석한 얼굴이었지만, 성의를 저버릴 수 없어 따라나섰다. 아주 가까운 곳에서, 잠깐이나마 늦가을의 정취에 흠뻑 취해 볼 수 있었다. 낙엽 위를 거닐고 있는 비둘기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아무도 거두어주는 이 없어도, 먹이를 챙겨주는 이 없어도, 어쩌면 저리도 고운자태로 잘 살아가고 있나싶어 어여뻐보였다.
자연을 좋아하고 산책을 좋아하는 걸마 덕분에 이다음에 둘이서라도 추억할 수 있는 사진들을 남길 수 있어서 다행스럽긴 하지만, 사진속의 모습을 보고 있자면 세월이 느껴져서 그다지 유쾌하지만은 않다. 그렇더라도 걸마가 카메라 앞에 서라고 하는 날까지는 못이기는 척 그리할 것 같다. 정은이는 엄마의 사진 찍는 포즈가 언제나 똑같다고 좀 다르게 찍어보라고 했는데. 내가 봐도 지루하게 한결같다. 자연 앞에서 겸손해지고 카메라 앞에서 다소곳해지고. 다음엔 렌즈 앞에서 율동이라도 해볼까 싶다.
별다른 결실 없이, 주변의~ 가족의~ 나의 염려들로 가슴한켠에는 젖은 낙엽과 흡사한 무거움도 담은 채, 2010년 가을을 보내고있다. 

Posted by 경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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